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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그린북, 인종을 뛰어 넘은 우정

by 후추갈갈 2023.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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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린북' 포스터

 

1. 영화의 배경 - 그린북이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했던 1960년대 중반 미국, 그중에서도 미국 남부를 중심으로 흑인의 선택권이 제한되면서 공공기관과 학교는 물론 주유소, 식당, 호텔 등 대부분이 흑인의 출입을 막고 흑인이 이용할 수 있는 건물조차도 화장실은 함께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곳도 많았습니다.

영화 그린북은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뉴욕 출신의 흑인 우편배달부에 의해 만들어진 책인 그린북의 본래 제목은 '니그로 운전자를 위한 그린북'이었습니다. 니그로라는 단어 자체가 통상적으로 미국에서 흑인을 낮춰 부르는 말이었는데, 흑인을 위한 안내책자의 제목에 니그로라는 단어가 버젓이 사용된 것은 참 아이러니 합니다. 당시 미국과 유럽에 자동차 보급량이 늘어날 때였는데 흑인 제한구역이 많았던 시기였기에 흑인 운전자를 위한 별도의 안내책자가 만들어진 것인데, 흑인이 갈 수 있는 호텔이나 식당, 흑인 운전 금지구역, 백인 운전자를 만났을 때의 주의사항까지 적혀있었다고 하니 당시 미국사회에서 흑인의 혹독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2. 줄거리 - 인종을 뛰어넘은 우정

영화 그린북은 위와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흑인 피아니스트로써 교양과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돈 셜리와, 역시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걸맞은 인종차별의 면모를 가지고도 생계를 위해 돈 셜리의 운전기사 겸 보디가드로 일하게 된 토니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8주 간의 미국 남부 전역 순회공연을 하게 된 돈 셜리. 그가 미국 내에서도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지역을 순회하게 되는 건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도전이자 그 상황을 이겨내고자 했던 의지였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공연 기획 담당자에게서 그린북을 받은 건 돈 셜리가 아닌 그의 백인 운전기사 토니였고 그 안내책자를 참고하며 투어를 시작합니다. 토니와 셜리는 성격인 취미 등 말하는 것 하나까지도 너무 다른 성향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삐걱대고 긴장감이 돕니다. 거칠고 과격하지만 셜리가 원하는 피아노 옵션 등을 나서서 교체해주는 등의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토니가 셜리는 차츰 익숙해지는 듯합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더 심각한 남부지역의 인종차별은 순회공연을 하는 내내 셜리를 괴롭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하며 절제하는 모습을 보이는 셜리를 보며 토니는 화가 나지만, 차별의 벽을 깨고 싶은 마음으로 남부투어를 선택한 셜리의 의지에 감탄합니다. 

 

어느덧 마지막 공연을 앞둔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서 역시 흑인이라는 이유로 식사조차 못하게 하는 등의 부당한 대우와 차별은 어김없이 다시 일어납니다. 두 사람은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그곳을 박차고 나와 허름한 흑인 클럽에서 마지막 저녁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마침내 모든 일정을 마친 셜리는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하는 토니를 위해 폭설이 내리는 악천후를 뚫고 열심히 운전까지 교대해 가며 무사히 뉴욕에 도착합니다. 축제나 다름없는 토니의 집과는 달리 텅 빈 외로운 집에서 집사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셜리는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와인을 들고 토니의 집으로 향합니다. 

 

 

3. 아직도 존재하는 그린북

그린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두 달간의 순회공연 여정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는 틈에 아내 돌로레스에게 안부 편지를 쓰는 토니에게 다가간 셜리가 문법과 문맥이 엉망인 내용을 고쳐주며 낭만적인 편지 쓰기를 도와주는 장면입니다. 셜리는 셰익스피어의 문장과 같은 아름다운 문구를 인용함으로써 후에 만난 토니의 아내 돌로레스에게서 토니가 편지 쓰는 것을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듣게 됩니다. 토니처럼 거칠고 건달 같은 사람도 아내와 가족을 향한 사랑이 애틋하다는 것과, 아무도 없이 홀로 혹독한 시대에 맞서 견뎌내고 있는 셜리의 따뜻함이 만나 대조되다가 점점 서로의 방식을 받아들이며 가까워지는 것을 마침내 느꼈습니다. 덕분에 내 마음도 따뜻해졌습니다. 

 

아내에게 보내는 토니의 편지쓰기를 도와주는 돈 셜리

 

영화가 끝난 후 에필로그 영상에는 실제 인물들이 잠깐 소개되었는데, 이후 돈 셜리는 계속해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며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남기고, 토니는 본래 자신이 일하던 클럽에서 지배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둘은 후에도 우정을 유지하다가 2013년에 몇 개월 차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름다운 마무리인 것 같지만 영화가 개봉된 직후 실존 인물인 돈 셜리의 유족들은 사실 왜곡이나 제작 당시 본인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논란 속에서도 영화는 대단한 인기를 끌며 각종 영화제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면서 아직도 인종과 장애인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세상에 만연한 차별에 대해 메시지를 남긴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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