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은 가수 김광석의 영정사진
영화는 허진호 감독이 가수 김광석의 '활짝 웃는 영정사진'을 보고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주인공 정원의 직업이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사로 설정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죽어가는 한 사람의 일상에서의 밝은 부분에 초점을 두고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자신의 영정사진을 직접 골랐을 리 없는데도 가수의 죽음과 그 사진을 연결해 시작된 영화라니 평소 가수 김광석의 팬으로서 조금 놀랐고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영화는 어느 평범한 남자가 맞닥뜨리는 죽음의 과정을 보통의 영화처럼 고통과 비극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담담하다'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두 명의 남녀 주인공들의 연기는 관객을 영화에 자연스럽게 스미게 합니다.
2. 영화의 줄거리
어느 여름, 작은 동네에서 2대째 초원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정원은 죽을 날을 앞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평소처럼 일상을 살며 하루 하루를 보냅니다. 사진을 찍고, 인화하고, 밥 먹고, 설거지하면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온화한 사진관 아저씨로 살아가면서 남겨질 아버지를 위해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등의 작동법을 알려주는 등 홀로 이별을 준비하는 그의 마음을 어찌 알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원이 마치 죽음에 대해 초탈한 듯 '평소처럼 살다' 생을 마감하려는 모습은 오히려 관객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정원이 친구 부모님의 장례식을 다녀왔던 어느 날, 머지않아 자신에게도 닥칠 죽음을 느끼고 온 탓인지 많이 지친 탓에 사진인화를 재촉하는 다림에게 쌀쌀하게 대하지만 이내 미안함을 느끼고 아이스크림을 건네면서 사과하면서 둘의 인연은 시작됩니다. 구청 소속 주차단속원인 다림은 단속사진을 인화하러 초원 사진관을 이용하는 단골이 되어 자주 만나기 시작하면서 호감을 갖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정원은 시한부라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다림에게 먼저 다가가지도 않고 딱히 마음 표현도 없이 끝까지 다림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지도 않습니다. 반면 다림은 정원에게 꽤나 적극적이고 거침이 없습니다. 나이와 결혼 여부 등을 묻고 은근히 데이트 신청을 하기도 하고 대화 도중 갑자기 팔짱을 껴서 정원을 놀라게도 하는 등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현하며 밝고 명랑한 성격을 드러냅니다. 겉으로의 행동과는 달리 정원도 다림을 향한 마음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단지 정원은 지쳐서 사진관에 들렀다 깜빡 잠든 다림에게 선풍기 방향을 틀어주고, 스쿠터를 태워주고, 미소 지을 뿐입니다.
3.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어느 덧 건강이 악화돼 두 사람은 어긋나 만날 수 없게 됩니다. 다림은 사진관에 계속 찾아가 봐도 만날 수 없자 편지를 써서 사진관 문에 꽂아놓기도 하고 어느 날은 화가 나 사진관 유리에 돌을 던지기도 하지만 이내 정원을 그리워합니다. 정원 역시 편지를 쓰지만 끝내 다림에게 전하지는 못하고 대신 영화 마지막에 흐르는 정원이 독백으로 그 답장을 대신했습니다.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정원이 죽고 나서 겨울이 되었습니다. 정원의 초원 사진관은 정원의 아버지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사진관 진열대 사진들 속에서 자신의 사진을 본 다림의 얼굴에 미소가 어립니다. 검은 옷을 차려입은 것으로 보아 다림이 정원의 상황을 알고 있는 것인지. 영화에는 자세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다림의 얼굴에서 여러 감정이 비쳐 보입니다. 뜨거운 여름에 만난 둘은 겨울에 헤어졌습니다. 두 계절을 이어주며 삶과 죽음의 다름과 같음을 읽어보게 하는 의미로써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이 되었다고 하는데 나는 두 사람의 너무 짧았던 만남이 너무 아쉬울 뿐입니다. 주인공 정원 배역을 맡은 한석규 배우가 직접 부른 주제가 '8월의 크리스마스'가 흐르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영화에서 가족들과 가족사진을 찍었던 한 할머니가 혼자 사진관으로 돌아와 본인의 영정사진을 찍는 모습이 정원 스스로 찍은 자신의 영정사진과 이어지며 끝까지 스스로 마지막을 준비했던 정원을 안아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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