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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인도영화 추천, 런치박스 - 잘못 배달된 도시락이 맺어준 인연

by 후추갈갈 2023.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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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런치박스' 포스터

 

1. 인도 영화만의 소재

영화의 소재가 된 도시락 배달 문화는 참 신기합니다. '다바왈라'라는 인도 뭄바이에서만 볼 수 있는 가정 도시락 배달원인데 '도시락통(다바)을 배달하는 사람(왈라)'라는 뜻으로 다바왈라 4,000여 명이 하루 30~40개씩 매일 15만 개 가까운 도시락을 배달한다고 합니다. 20명으로 한 그룹을 이루는 다바왈라는 매일 오전 7~9시에 가정에서 도시락을 수거해 기차를 통해 도시락들을 각 지역으로 이동시키고 도착역에서 또 다른 다바왈라들이 40개 정도의 도시락을 이동식 나무틀 앞에 담아 도시락 주인들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입니다. 모든 도시락통에 색깔과 숫자 등으로 도시락 주인과 행선지를 코드화해 글을 읽지 못하는 다바왈라도 한 치의 실수 없이 배달을 완료합니다.

1890년 시작돼 120년 전통을 자랑하는 다바왈라의 완벽한 팀 시스템과 정교한 일정관리 체계는 전 세계 언론과 현대 경영학에서 연구대상이 되었을 정도입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에서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다바왈라들의 도시락 배달 정확도는 99.999999%라고 합니다.

 

2. 줄거리 - 잘못 배달된 도시락이 맺어준 인연

퇴직을 앞둔 공무원 사잔은 인도 뭄바이에 살며 직장 생활을 합니다. 아내를 잃고 외롭게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처음 보는 점심 도시락통이 배달됩니다. 매일 아침 인도 뭄바이에서는 5,000명이 넘는 도시락 배달원 '다바왈라'들이 집에서 부인들이 만든 20만 개의 도시락을 남편 직장에 배달하는데, 이 날은 어찌 된 일인지 일라가 남편을 위해 정성껏 싼 도시락이 사잔에게 잘못 배달된 것입니다. 매일 아침 점심도시락이 시간에 맞춰 배달되는 것도 신기한데 사실 이렇게 배달 사고가 날 확률은 600만 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하니 신기한 풍경입니다.

 

사잔은 영문도 모른 채 자기 앞으로 배달된 도시락을 맛있게 먹었고 오랜만에 먹는 정성스런 집밥에 감동합니다. 그렇게 돌아온 빈 도시락통을 받은 일라는 요즘 들어 부쩍 소원해진 남편과의 관계를 떠올리며 인생의 행복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매일 정성껏 도시락을 싸 보냅니다. 하지만 깨끗한 도시락과는 달리 변화가 없는 남편의 무심한 태도를 보며 도시락 배달 사고를 눈치챈 일라는 남편 대신 자신의 도시락을 깨끗하게 비우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렇게 얼굴도 모르는 채 주고받기 시작한 도시락 편지는 음식과 함께 평범한 일상 이야기로 시작해 가족과 인생에 대한 속마음 같은 진솔한 이야기까지 털어놓게 되며 두 사람의 마음은 깊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에게 찾아오는 작은 변화들을 시시때때로 포착해 보여주는 데 이는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라의 도시락을 앞에 두고 열심히 일하는 사잔

 

3.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준다

평소처럼 도시락 편지를 주고받던 어느 날 일라는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고 현재 자신의 생활에 염증을 느낍니다. 그리고는 사잔에게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부탄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도시락과 함께 보냅니다. 그 편지를 받은 사잔 또한 일라와 함께라면 지금과는 다른 새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마음이 설렙니다.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주고 받던 편지는 어느덧 사잔의 무료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고, 남편의 무관심에 지쳐가던 일라의 마음에 위로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소통이 인간이 가진 외로움과 상처를 보듬고 변화시켜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일라의 부탄 이야기에 사잔은 본인이 부탄에 함께 가면 어떻겠냐는 답장을 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드디어 만나기로 하고, 사잔은 설레는 마음으로 일라를 만나러 가지만 너무 젊고 아름다운 일라에 비해 중년의 초라한 자신을 보며 두려워 그녀 앞에 나설 용기를 내지 못하고 돌아섭니다. 하지만 일라는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줄 수 있다"며 기차를 타고 먼저 부탄으로 떠납니다. 평범한 가정 주부였던 일라의 용기 있는 결단에 다시 한번 놀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렇게 영화가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왜 꼭 두 사람이 이후 부탄에서 높은 행복지수를 만끽하며 지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선택이 항상 옳을 수만은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의외의 선택이 옳은 선택이었다는 걸 알게 될 때도 있습니다.

 

음악과 노래, 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던 인도 영화들과 달리 재미있는 소재와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선, 화려하고 아름다운 인도만의 색감 등이 영화를 촘촘하게 메꿔주어 정말 좋은 영화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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