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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벌새 - 보편적인 은희 이야기

by 후추갈갈 202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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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벌새' 포스터 속 은희

 

1. 그저 보편적인 은희 이야기

1994년의 배경으로 은희라는 중학생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은희가 집, 학교, 학원 등을 오가며 겪는 일상적인 경험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이 시대 1994년 한국에서 살아가는 청소년, 그중에서도 여성 청소년의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이 청소년이기 때문에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을 중요하고 비중 있게 다룰 수밖에 없는데, 가족 구성원 중 남성인 두 명, 아빠와 오빠는 가정폭력의 가해자입니다. 은희의 언니 수희의 방황으로부터 가족의 싸움은 시작됩니다. 아빠는 자식의 방향에 대한 화풀이로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집안의 물건을 던지며 다치게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다음 날이 되면 팔에 붕대를 두른 아빠와 엄마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아무렇지 않다는 듯 텔레비전을 보며 웃고 있는 모습이나, 같이 앉아 식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 은희의 오빠 대훈이 대학 진학 스트레스를 여동생 은희에 대한 폭력행사로 푸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은희는 무덤덤해 보이지만 가끔 오빠 때문에 힘들다는 유서를 쓰고 자살하는 생각을 한다고 한문학원 친구 지숙에게 말하며, 자신이 죽은 뒤 죄책감에 괴로워할 오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루 동안은 유령으로 있고 싶다고 합니다. 상상만으로도 속이 후련하다고 말하니 친구 지숙도 집에서 폭력을 당한다고 대답하며 그들이 자신들에게 미안해하기는 할까 하며 한탄합니다. 마치 그것이 자기들 집만의 특별함이 아닌 것처럼 여기는 듯합니다. 가정 안에서 여러 가지의 폭력이 오가지만 마치 이게 무슨 별 일이냐는 듯 평범해 보이기 까지 하는 은희나 지숙의 가족의 모습은 1994년의 우리 가정들의 모습이 대부분 이랬을까 하는 불편한 궁금증이 드는 부분이었습니다.  

 

 

2. 1초에 90번 날갯짓을 하는 벌새, 은희

1초에 90번 날갯짓을 하는 벌새처럼 주변의 관계들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분주하게 노력하는 은희는 오늘도 성실하게 그들과의 관계 구축에 애를 씁니다. 영화는 그런 은희의 벌새같은 절박한 마음과 깊고 촘촘한 그녀만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궁금할 나이 은희는 공부보다는 남자친구와의 연애 그리고 단짝 친구와의 우정이 더 중요하고 그 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하지만 은희의 세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친구를 만나는 것을 보게 되고, 단짝 친구와는 사이가 틀어져 하루아침에 친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루하루가 복잡하고 마음이 매우 혼란스러운 와중에 한문 학원에 새로 온 선생님 영지를 처음 만납니다. 은희는 자신을 이해하고 마음을 열어준 아마도 최초의 어른인 영지 선생님을 의지하고 좋아하며 따르게 됩니다. 지숙과 틀어지고 혼자 학원에 와 앉아 있는 은희에게 말을 걸어주고 차를 내어주며 영지는 은희를 위로합니다.

 

 

영화 '벌새' - 영지 선생님의 따뜻한 눈빛

 

어느 날 은희는 영지와의 대화 중, 학원에 오는 길에 본 재개발 반대 현수막에 대해 왜 저렇게 사는 건지 묻고, 그저 집을 빼앗기지 않으려 하는 거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에 불쌍한 생각이 드는 은희에게 영지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너무 많고, 불쌍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해줍니다. 은희는 문득 영지에게 자신이 싫어진 적이 있는지 묻습니다. 아주 많다고 답하는 영지에게 그렇게 좋은 대학에 다녀도 자신이 싫어진다는 사실에 놀라고 맙니다. 영지는 자기 자신을 좋아하게 되는 데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위로가 필요해 보이는 은희에게 영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신비롭게 느껴진다며 자신이 싫어질 때는 그냥 그런 마음을 들여다보며 손가락을 보라고 말해 줍니다. 은희는 영지 선생님이 너무 좋습니다.

은희가 건강상의 이유로 수술을 받게 됐을 때 영지는 병문안을 가서 은희에게 앞으로는 맞지 말라고, 누구라도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우라고, 절대로 가만히 있지 말라며 약속도 받아냅니다. 하지만 영지는 그 후에도 오빠에게 폭력을 당했고 하필 수술 부위와 근접한 귀에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아갑니다. 고막이 터진 것을 이상하게 본 의사는 폭력으로 의심해 진단서를 발급해 주려 하지만 은희는 오히려 그게 필요한 이유를 궁금해하며 문제 인식조차 하지 못합니다.

퇴원 후 학원에 간 은희는 영지 선생님이 학원을 그만뒀다는 사실을 알고 짐을 챙기러 온다는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계단에 앉아 기다리지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영지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영지가 보낸 소포를 받고 주소를 보고 집에 찾아갔다가 영지가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당했음을 알게 됩니다. 은희는 영지의 방에서 영지의 영정사진을 보고, 영지가 가르쳐준 것처럼 손을 바라봅니다. 

 

은희는 영지가 보낸 소포에 함께 들어있던 편지를 다시 읽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지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다. 나쁜 일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엇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비하고 아름답다. 학원을 그만둬서 미안해. 방학이 끝나면 연락할게. 그때 모두 다 얘기해 줄게." 누구나 자신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따뜻한 차 한잔 내어주고, 해답을 주려 하지 않고 자기를 좋아하게 되기까지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거라고 알려주며 그저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인생에 한 명쯤은 있길 바라며. 그런 사람을 만나 마음이 따뜻해졌을 은희가 행복하게 지내고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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