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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혼자 사는 사람들 - 사람은 누구나 혼자 살아간다

by 후추갈갈 2023.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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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포스터

 

1.  진아의 삶과 그 안의 관계들

영화가 시작되고 꽤 오랫동안 주인공 진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대사가 없는 조용한 영화입니다.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하고 편한 그녀의 직업은 아이러니하게도 고객센터 전화 상담원입니다. 하지만 곧 그 직업을 택한 이유가 이해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커다란 사무실에 다 같이 빼곡히 들어앉아 있지만 칸막이로 막혀 있는 각자의 공간에서 동료와 대화할 필요 없이 전화를 받고 있는 진아의 모습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고객들을 저마다 다른 성향을 가지고 다양한 요구사항을 말해 옵니다. '쭉빵 클럽' 결제에 대한 문의를 하는 딸을 가진 아빠이기도 한 남성의 전화 같은 건 이제 진아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감정을 빼고 해탈한 듯 주어진 업무를 해나갈 뿐인데 실적은 늘 1위입니다.

 

진아도 아빠에 대한 상처가 많고 아빠라는 존재에 대해 휘둘리지 않을 만큼 내성이 생겼습니다. 진아의 아빠는 17년 전에 엄마를 두고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다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변호사를 대동하고 엄마의 재산을 넘겨받기까지 합니다. 여기서도 진아는 크게 동요하지 않고 상속서류에 도장을 찍는데, 아마도 아빠라는 사람과 뭔가를 해야 하는 그 상황이 너무 싫어서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진아가 돌아가시기 전 엄마와의 관계가 좋았던 것도 아니었기에 진아에게 가족은 그저 부모와 자식의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생각을 하니 진아가 왜 혼자 사는 삶을 택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잔잔하고 조용하게 영화는 흘러가는 듯했으나 곳곳에서 진아의 일상을 흔드는 사소한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진아가 혼자 사는 아파트 옆집에 이사 온 남자는 마주칠 때마다 진아에게 말을 걸어와 진아는 달갑지 않아 듣는 둥 마는 둥 지나치는데도 꿋꿋합니다.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기 싫고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진아이기에 늘 옆집남자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합니다.

 

한편 회사에서 자기 일만 하면 됐던 진아에게 신입사원 사수라는 업무가 주어지고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여러번 전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결국 신입사원 담당 교육을 하지만 살가운 선배가 될리는 없는 진아에게 팀장은 신경 좀 쓰라고 말하는데, 진아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똑같아요. 제가 팀장님 부사수일 때 팀장님이 저한테 했던 것과 똑같이 했을 뿐이에요" 이 말을 진아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하지만 이내 방치 속에 업무를 배우다가 잠적하며 회사를 그만둬버린 신입사원 수진이 진아의 삶을 조금 흔들어 놓습니다. 진아는 처음으로 자기 심경을 고백하는데 그 상대가 수진이라는 것이 좀 놀랍습니다. "나도 모르겠어요. 혼자가 편하다 생각했는데... 아닌 것도 같아요. 아니, 사실 저도 혼자 밥 못 먹는 것 같아요. 혼자 잠도 못 하고 버스도 못 타고... 사실 저 혼자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아요. 그냥 그런 척하는 것이지."라는 말에 혼자 집에서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걸어 다닐 때 항상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틀어놓고 생활을 하고 집을 비울 때도 텔레비전을 켜두는 진아가 왜 그랬는 알 것 같았습니다. 혼자가 편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공허함은 항상 존재합니다. "먼저 말 좀 걸어주지."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던 옆집 남자처럼 사실은 진아도 누군가 말 걸어주길 바랐던 건 아닐지. 그래서 그렇게 상처를 줬던 아빠를 끊어내지 못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2. 누구나 혼자 살아간다

처음 이 영화의 제목을 봤을 때는 그 때쯤 많이 회자되었던 비혼을 선언하고 혼자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걸까 생각했으나 그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가족, 친구, 동료 등 수많은 사람들과 때로는 얽히고 싶지 않더라도 인연을 맺고 살아가면서도 결국 때때로 닥치는 위기와 눈앞의 높은 산은 혼자 이겨내야 하고 삶을 살아내야 하므로 영화에서 말하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란 특별한 싱글라이프를 살아가는 어느 한 분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닌 우리 모두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삶은 누구에게나 치열하고 힘이 들기에 함께 아끼며 때로는 서로에게 도움도 주며 사는 게 이상적이지만 그러면서도 관계에는 적당한 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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