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포기한 건 단 하나 '집'
영화 '소공녀'는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만 있다면 더 바라는 것이 없는 3년 차 프로 가사도우미 미소의 이야기입니다. 해가 바뀔수록 집세도 오르고 담배와 위스키 가격마저 올랐지만 일당은 여전히 그대로인 상황에서 미소는 과감하게 집을 포기하고 일도 사랑도 자신만의 방식대로 해내며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현대판 소공녀입니다. 영화는 젊은이들의 로맨스에 치중하지 않고 주인공 미소가 만들어 가는 하루살이 여행에 더 집중했습니다. 새로운 장르의 영화로 신선함을 느끼기도 했고 영화를 보면서 나는 판타지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사랑스러운' 현대판 소공녀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난 저 안에서 '사랑스러울' 자신이 없음을 확실하게 압니다. 또한 매력적인 배우 이솜과 주인공 미소의 캐릭터는 너무나도 잘 어울려 배우가 캐릭터를 얼마나 완벽하게 이해하고 연구해 표현했는지 느껴졌습니다.
2. 줄거리 -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바퀴벌레가 들끓고 겨울의 혹독한 추위도 막아주지 못하는 집에서 견디며 가정집 방문 청소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미소. 여기까지도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청년 미소의 삶 입니다. 미소에게는 인생에 위스키도 담배도 남자친구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항목이지만 지출 목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집'은 가장 먼저 쉽게 내쳐질 수 있는 항목입니다.
그러던 중 5년 동안 변함 없던 집세마저 오르게 되자 자신의 인생에서 집을 삭제해 버린 미소는 하루하루를 여행하듯 살기 시작합니다. 집 없이 배낭과 슈트케이스에 짐을 싸들고 떠도는 생활 속에서도 미소는 기죽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요소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런 미소의 당당한 모습은 앞서 말했듯 판타지에 가깝다고 느낍니다.
하루하루 지낼 장소를 찾기 위해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기 시작하며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며 그들의 일상에 짧고 강렬하게 파고듭니다. 여러 명의 친구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방식의 스토리가 단편영화 몇 편을 붙여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집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친구들의 삶과 집만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미소의 삶은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면서 집과 가족, 친구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각거리를 던져 줍니다. 집을 가졌지만 사랑을 가지지 못한 친구,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지친 결혼생활을 하는 친구, 부모와 모의해 자신을 가둬두고 결혼하려는 친구, 잘 나가는 집과 결혼해 잘난 척 하지만 남편에게 얽매여 사는 모습, 자신의 잣대로 충고하는 친구 등 다양하기도 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특히 부모와 모의해 미소를 가둬두고 결혼을 하자고 헛소리를 하는 록이에게는 "집이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라는 명대사를 남기고 탈출합니다.
미소는 오히려 겉모습은 그럴듯하지만 마음이 힘든 친구들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맛있는 반찬을 해두기도 하고, 집을 말끔하게 청소해 주고 나와서는 웹툰 작가 지망생 남자친구와 헌혈을 하며 너만 있으면 된다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습니다.
3. 각자의 삶에는 무게가 있다
여행 가방은 삶의 무게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소의 여행 가방은 잠시 1박 2일 떠나는 가방이 아니고 삶의 가방이지만 언제든 떠날 수 있고 무엇보다 가방을 맨 미소의 얼굴이 다른 이들보다 가장 행복해 보입니다.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가방들을 끌고 다닐 때에도 미소가 가엽거나 불쌍해 보이지 않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미소의 삶을 보면서 인생에서 나를 만들어가 가는 과정에 가장 중요한 것을 참고, 잃어가며 사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자꾸만 이 영화는 판타지라고 말하며 현실성에 대해 부정하게 되는 나 자신도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잃어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나에게 정신 차리라는 듯 영화는 미소가 한강뷰 텐트에 따뜻한 조명을 켜면서 끝이 납니다. 결국 미소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요소들을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도 어딘가 할 일을 찾아다니며 위스키와 담뱃값을 벌고 있을 것입니다. 영화의 배경이 내내 겨울이었던 건 미소를 포함한 이 시대 청춘들의 혹한기를 보여주고자 한 의도였을 겁니다. 내일이면 3월이 되고 곧 봄이 올 것입니다. 추위를 잘 견뎌낸 모두에게 따뜻한 햇살이 비추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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