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I와 사랑할 수 있을까?
영화의 배경은 2025년이며, 주인공 테오도르는 낭만적인 편지를 대필해 주는 기업의 전문 작가로 일하고 있는 고독하고 내향적인 남성입니다. 가족에게, 연인에게 직접적으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편지글을 써주는데 그 내용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오랜 연인과 결혼 후 별거 중으로 1년 넘는 시간 동안 아내를 잊지 못하는 중이며,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무료하게 살고 있습니다. 소개팅 앱 등으로 외로움을 해소시킬 인연을 만나보려 찾아보기도 하지만 단순한 쾌락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공허함에 하루하루 시들어져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공지능으로 말하고 적응하고 스스로 진화하는 운영체제가 설치된 기기를 구매해 여성으로 설정하면서 가상의 여인 사만다를 만나게 됩니다. 사만다라는 이름도 그녀 자신이 지은 것이며, 처음에는 인공지능에 의구심을 품었던 테오도르는 심리적으로 성장하고 놀라운 속도로 습득하는 능력을 가진 사만다에게 점점 집중하게 됩니다. 테오도르와 사만다는 너무나도 다른 둘이지만 서로 나누는 대화와 교감에 익숙해지고 점점 친밀해지고 모든 일상을 함께 하며 깊은 유대감을 갖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운영체제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털어놓기도 합니다. 과연 AI와 인간이 사랑할 수 있을까? 사만다와 함께 할 때 테오도르의 표정은 사랑할 때의 표정과 같았습니다.
2. 그 사랑의 지속성
자신이 사만다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기도 하지만 그런 자신의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까지 알아봐주는 사만다를 놓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무렵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닐까 걱정도 되지만 친한 친구 에이미 또한 자신과 동일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에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하고, 어느 날은 갑자기 사만다와 자신을 이어주던 기계가 먹통이 되자 패닉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테오도르는 문득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곧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다른 사람들과도 교감을 하는지 묻게 되고 사만다에게 듣게 되는 대답은 충격적입니다. 동시에 8,316명의 다른 사람들과도 대화하고 있으며 그중 641명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만다의 대답에 테오도르는 만감이 교차합니다. 사만다에 대한 마음이 깊어질수록 고민과 외로움도 깊어지는 테오도르를 보며 상대방이 인공지능이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상대방에 대한 기대만큼 서운함도 커져가고 사랑의 깊이만큼 상처도 깊어지는 등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겪는 감정의 변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상대가 사람이 아니기에 그동안의 사랑과 뭔가 다를 거라는, 그만큼 상처받지 않을 거라는 안심과 기대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곧 상대가 사람이 아니기에 대화를 제외하곤 현실적으로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자각하며 또다시 자괴감을 느낍니다.
3. 서툰 당신을 안아준 이름, 그녀(Her)
결국 운영체제인 사만다가 작별을 고하고 사라지면서 테오도르는 다시 한 번 이별을 하게 됩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테오도르는 그제서야 전처 캐서린과의 이별도 진심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대필 편지 전문 작가인 테오도르는 캐서린에게 비로소 마음을 담아 자신의 편지를 쓰게 됩니다. "그냥 네가 알아줬으면 해. 내 마음속에는 네가 한 조각 있고 난 그게 너무 고마워. 네가 어떤 사람이 되건 네가 세상 어디있건 사랑을 보낼게. 난 언제까지나 네 친구야." 중간중간 나오는 테오도르의 글과, 그의 마음을 표현한 대사들도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입니다. 이렇게 테오도르는 인간과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힘들어하다 인공지능과의 만남과 사랑, 이별을 겪은 후 비로소 '진짜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위안을 받게 되면서 끝이 납니다.
나에게 영화 'Her'는 테오도르를 연기한 배우 호아킨 피닉스를 다시 보게 된 영화였습니다. 현대인의 외로움과 공허 그리고 심리적으로 방황하는 그의 연기는 관객에게 엄청난 몰입감을 주었습니다. 더불어 귀에 나지막이 속삭이는 듯한 사만다 역의 스칼렛 요한슨의 매력적인 목소리도 돋보이는 영화였습니다. 또한 이 영화의 개봉은 2013년 이었고, 영화 속 시대 배경은 2025년으로 당시 멀게만 느껴졌던 2025년의 발전된 인공지능에 대한 묘한 기대감과 호기심을 갖게 해 줬지만 2023년의 지금까지도 저 정도의 인공지능은 먼 이야기로 느껴집니다. 시스템 발전 여부와 관련 없이 인간이 가진 본질적 외로움과 그것을 치유하고자 하는 소망은 여전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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